나의 폭군 한때는 그의 불안정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고작 한철을 위해 피어나는 꽃처럼 제 몸을 태우는 위태로움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던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츠키야마에게 그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하찮은 존재처럼 여겨져도 좋았던 나날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한 위태로움만큼 그 간절함도 한철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 ‘…….’ 제 품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 남자는 누굴까. 츠키야마는 습관처럼 한숨을 쉬다가 그의 등을 끌어안아 제게 당겼다. 힘없이 쏟아져 내리면서 부대끼는 단단한 몸이, 꼭 숨죽은 절규처럼 느껴졌다. 나의 왕. 츠키야마는 그 속으로 담기만 해도, 애틋한 말을 감히 내지 못했다. 대신 그의 머리 위로 제 숨이 섞인 중얼거림을 뱉어냈다. “…오늘도 힘들..
1. 집은 주인을 닮기 마련인가 보다. 츠키야마 가는 몇 번의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특유의 풍이 있었다. 밝고 경쾌하면서도, 떠들썩하지는 않은 저택은 그곳에 살았던 주인들의 꼿꼿한 등을 닮았다. 친절하게 느껴지는 미소와 달리 우아하고 정제된 몸가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히 선을 그었다.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츠키야마 역시 주변과는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단발머리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니, 고요한 목소리로 알렸다. 츠키야마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기울였다. “손님? 누구지?” “잘 모르겠습니다.” 츠키야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실눈을 떴다. 잠시 생각에 잠긴 츠키야마는 이내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방으로 맞이하도록.” 츠키야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
[카네츠키] 외로운 글 *퇴고는 천천히~ 내게도 향기가 있다면 그건 외로움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엉망이 된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며, 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자, 머리는 제법 그럴듯해졌다. 하지만 수도꼭지를 틀어막아도 손금에 물이 차듯이, 본연의 외로움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티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체취란 그리 쉽게 숨겨지지 않을 테니까. 혹시 외로움이 정말 맡아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켄은 가끔씩 손목에 코를 박고, 무슨 냄새라도 나는 양 킁킁거리고는 했다. 당연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굳이 냄새가 난다면 아까부터 손에 묻은 왁스 냄새 정도였다. 그마저도 비누칠을 하면 사라지기 마련인데, 우습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맡아지지도 않는 주제에 사라지지도..